카리스랜드

특별한 무대

포항부동산정보공인중개사사무소 2015. 6. 1. 09:34

 특별한 무대


특별한 무대 나는 지난 주말에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 다녀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접근하게 되었다. 4인조 남성밴드 <신음소리> 리더인 주인공은 3년 전에 폐암을 선고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미 뼈까지 암이 전이되어 더 이상 손 써볼 수 없는 상황임에도 그는 콘서트를 열겠다고 지인들에게 선포했을 때 모두가 반신반의했었다. 자신은 거의 병실에만 있었기에 멤버들과 연습할 시간도 거의 없었는데도 고집스럽게 무대에 서겠다고 하기에 누가 말리지 않았겠는가. 나도 지인을 통해 소식을 듣고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그를 만나러 갔었는데, 너무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나는 적잖게 당혹스러웠지만 막상 그로부터 콘서트 개최 배경을 들을 땐 <신음소리>라는 타이틀은 고통스러운 앓는 소리가 아닌 하늘로부터 ‘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아, 멍멍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공연 내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처음 암을 선고 받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본인보다 더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결론은 대동소이했다. ‘니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병에 걸렸니...’ 처음엔 그들도 위로하려했지만 나중엔 정죄(定罪) 자가 되어 그의 가냘픈 심장에 비수를 꽂고 있었다. 나도 암에 걸렸을 때 이런 유사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터라, 욥(Job)친구 같은 그들이 내게도 클로즈업되어 내 심장은 밴드의 소리보다 더 크게 뛰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나름대로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지인들에 대한 감정이 교차되어 견디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한 답(答)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자신의 부질없는 짐들을 내려놓고 병마의 원인 찾기를 포기하자, 천근만근 무거웠던 가슴이 한 순간에 새털보다 가벼워지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건강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아프다고 세상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암(癌)도 가족처럼 받아들이자. 사는 것도 물론이요 죽는 것도 내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 모습 그냥 이대로 품고 살다가 그가 날 오라하면 가보자.’ 더불어 다만 그에게 달라진 것은 어떤 일이든 내일로 미룰 수 없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것은 내일은 내 날이 아니므로 아무도 알 수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에 핑계하지 말고 뭐든지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날 콘서트도 죽음이 임박했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이기에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덧 붙여졌다. 공연 내내 <신음소리> 본래 의미가 전달되었는지 회중들의 가슴에도 여과 없이 전해져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자와 청중은 하나가 되어 곡이 끝날 때마다 각 자에게 반성과 결단을 촉구하는 ‘신의 음성’은 더 크게만 느껴져 90분 공연은 무언가에 끌려가듯 순식간 지나갔다. 그의 부인은 이태리에서도 인정받았던 성악가였지만 남편에게 암이 찾아오자 한 순간에 모든 환경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남편 뒷바라지만 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대해 얼마든지 불평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남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지금 이 모든 일들은 고통이 아니라 그 사랑을 보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고백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을 핑계하고 환경만 탓하는 비겁한 자신을 향해 도리질하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우문우답 속에 나는 순간 그동안 갈등하고 있었던 어떤 문제를 쉽게 결단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연극인 손 숙씨가 어느 날 2년 전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에게 ‘점심 좀 먹자’며 전화가 왔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려는데 조심스럽게 그 친구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1년 뒤에 죽는데...’ 췌장암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친구는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손 숙씨는 너무 충격을 받아 손이 덜덜 떨렸다. 친구는 정말로 말대로 1년 동안 죽음을 침착하게 준비해 나갔다. ‘인천 가자!’ ‘강화도 가고 싶어...’ ‘냉면 먹자!’ 그런 전화가 올 때마다 친구들은 함께 모여 옛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정을 나누었다. 1년 뒤 친구는 말대로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아무 말 없이 저 세상으로 훌쩍 가 버렸다. 손 숙씨는 그 일로 인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이도 나이지만 몸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행여 죽기 전에 병원에 누워서 주삿바늘 치렁치렁 꽂아 놓고 누워있으면 어찌하나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손 숙씨는 이런 도전적인 멘트를 남겼다. ‘우리는 태어나는 건 축복이라 여기면서 왜 돌아가는 것은 쉬쉬하고 말도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이 우리 인생의 과제다. 사르트르 말대로,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탄생(B)과 죽음(D) 사이에 끝임 없이 어떻게 선택(C)하느냐에 따라 좋은 인생(b)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인생(d)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보통 ‘소풍’으로 비유한다. 소풍은 아무리 재미있고 좋아도 해가 지기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하듯, 우리도 내 사랑하는 모든 가족들을 놔둔 채 지구 별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갈 때 편안하고 고상하게 갈 수 있도록, 생의 목적이 웰리빙(well-living)보단 웰다잉(well-dying)이 되어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사람이 품격 있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듯이, 잘 사는 일은 잘 죽는 일임을 알고 죽음을 늘 염두 해 둔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오늘 웃자. 오늘 사랑을 표현하자. 오늘 베풀자. 오늘 기도하자. 오늘 용서하자. 오늘 진실하자. 오늘 근신하자. 오늘 담대 하자. 오늘 감당하자. 오늘도 내 특별한 무대는 점점 더 가까이 옴을 기억하자. 그래서 오늘이라는 무대가 마지막 특별한 무대처럼 살아보자...! 2015년 5월 4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포남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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