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들의 희생과 봉사에 빚진 자로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센인 전문 선교를, 국내에서는 일반인의 한센인에 대한 의식 계몽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남(65·사진)선교사는 어디를 봐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한센병력이 있는 그는 누가복음 17장 11∼17절에 예수께 고침 받고 감사드린 한 명의 한센병자처럼 '감사드린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충남 금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이날 달리기하다 넘어져 한센병에 감염됐다. 초등학교 4학년인 그는 가족과 떨어져 움막에 혼자 살다 낯선 아주머니의 소개로 소록도에 들어갔다. 거기서 오근옥 장로와 한 집에 살았다. 오 장로는 손양원 목사를 모시고 애양원 교회 창립 때부터 충성해오다 한센병에 걸린 분이었다. 이 선교사는 눈이 보이지 않는 오 장로를 수발, 주일예배에 따라갔다가 별세계를 보았다.
"신기하게도 일그러진 얼굴들에서 기쁨과 희열이 반짝였어요. 저처럼 슬픔과 절망에 짓눌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오 장로의 기도생활이 그의 마음을 움직여 새벽기도회도 나갔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매달리기로 결심했다. 소록도에서 산 지 8년 만에 완치됐다.
"병이 다 나아도 환자 딱지를 떼지 못하고 여전히 '음성인'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녔어요. 사회복귀가 어려워 음성인들끼리 모여 사는 정착촌에 들어갔어요."
부산 상애원에서 양계, 양돈으로 자립기반을 다졌다. 섬기던 상애교회에서 일반인 여성을 만나 결혼도 했다. 자녀를 낳고 살아오며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무시와 냉대로 많은 차별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도 제일제당 지역부장까지 지내며 두 자녀를 잘 키워냈다. 2007년에는 한센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자 '소록도여 안녕'(홍성사 간)이라는 신앙 간증서도 냈다.
이 선교사는 "우리나라엔 완치됐음에도 신체에 남은 흔적으로 인해 사회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한센인들끼리 모여 사는 정착촌이 88곳이나 있다"며 "이제는 이들도 정착촌을 벗어나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사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http://cafe.daum.net/char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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