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랜드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것

포항부동산정보공인중개사사무소 2012. 6. 11. 10:44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목적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인생과 신앙의 실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된다는 것은 단지 중요하다고 여기며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목적'이란 그것이 전부요, 그것만 이루어지면 다른 것은 없어도 좋은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피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신 신앙 명령은 우리에게 단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한 선배 목사님이 하는 말이, 자신이 신학교를 다닐 때 수많은 신학생들이 커닝을 하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보기에 대략 열에 세 명 정도가 커닝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실망을 해서 신학교 1학년 시절,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학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신학생들이 커닝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그것은 분명코 아닐 것이다. 신학생이 아니라 평신도라도 누구든지 그 정도쯤은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근본적인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들은 바로 이 문제, 중요한 것과 일생일대의 목적을 혼돈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어쩌면 그들은 죄를 피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단지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그것이 일생일대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으리라. 중요한 문제란 항상 더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뒤로 밀리게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이것을 명령하셨다. 죄를 피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일생일대의 목적이 되라는 것이다.

 단지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목적이 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머지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목적이 아닌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미묘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신앙을 버린 적이 없다.

 바로 여기서 그들은 속았다. 그러나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문제는 자연스레 더 중요한 문제 앞에서 밀려났고, 그것은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죄를 피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과 목적, 이 차이를 짚어야 한다. 이스라엘도 속았다. 우리도 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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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수동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