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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제일 먼저 군대엘 갔었습니다

포항부동산정보공인중개사사무소 2012. 9. 4. 14:36

 

‎2012. 9.4. 화요일.

1. 둘째 아이가 제일 먼저 군대엘 갔었습니다.

2. 최전방 수색중대 유격조교였습니다. 군대생활 제법 어렵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었던 것 같습니다.
...

3. 부대로 면회를 갔었습니다. 그곳에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컨센트로 지은 초라한 예배당이었습니다.

4. 내 아이가 있는 곳에 예배당이 있어서 주일마다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5. 예배만 있다면 내 아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감동적인 확신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6. 그 때 감동을 받아 그 동안 목회하는 동안 꽤 여러 채 군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재정으로 제 아들이 근무하는 곳의 예배당을 짓지는 않았습니다.

7. 그 모습을 보고 교인 한 분이 우리 아들 있는 곳에 예배당을 지어 주셨습니다.

8. 어제 장인 어른 장례를 하였습니다.

9. 큰 처남이 다니는 교회에서 장례를 집례해 주셨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수도 없이 많은 장례를 집례해 보았지만 상을 당한 유가족의 입장에서 예배를 인도해 주실 때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10.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에도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처럼 귀하고 감사한 일이 어디있을까요?

11.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고 교회가 세워지기 전까지 우리 민족은 정말 가난하고 암울한 삶을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12. 그러던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개화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으로만 보아도 수출 세계 7-8위 권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얼마전 신문으르 보니 구매력 기준으로 볼 때 우리 한국 노동자의 연봉 구매력이 일본의 노동자를 앞섰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13.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4. 우리 한국의 개화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15. 교회는 개인과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16. 우리 한국에서도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였습니다.

17.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끄럽게도 지금은 아닙니다. 복음은 부끄럽지 않은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제가 지금 한국교회의 목사라는 것은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18.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못난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19. 며칠 전에도 초대형교회의 원로목사라고 하시는 분이 조간신문에 사적인 대형광고를 실었습니다. 제가 곧 한 번 그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20. 저는 개인적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와 하나님의 이름이 업신 여김을 받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21. 물론 이런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전부는 아닙니다. 일부분이라고 하기는 그 부분이 좀 크지만 그래도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일부분이 암적인 일부분입니다.

22. 우리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아프고 힘들어도 개혁의 칼을 놓으면 우리 한국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소금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23. 교회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 아이가 살고, 내 나라 내 민족이 삽니다. 교회는 생명이고 축복입니다. 교회가 죽으면 생명도 없고 축복도 없습니다.

24. 하나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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