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랜드
작은손선교회
포항부동산정보공인중개사사무소
2012. 10. 11. 10:53
장근조 장로 간증(2) : 작은손선교회

▲친환경 건축 마감재의 전문 업체로 널리 알려진 리빙스톤의 장근조 대표(장충교회 장로).
ⓒ크리스천투데이DB
“얘들아, 얘들아, 우리 선교할래?”
“네”
60여명의 초등부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만장일치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급하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사진 찍으세요, 빨리요. 그리고 ‘작은손선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1991년 장로로서 초등부 부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선교’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그 때는 아는 선교사님이 한 분도 없었다. 먼저 선교사님을 만나고 싶었다. 기독교 서점에 가서 선교잡지를 샀다. 책 뒤에 선교사님들의 기도 편지와 주소가 있었다. 무작정 다섯 분의 선교사님께 편지를 썼다. “장충교회에는 ‘작은 손 선교회’가 있습니다. 선교사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필리핀 엑소더스교회의 박광수 선교사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우리는 매월 한 주일을 선교주일로 지키며 선교헌금을 하고, 그 교회 아이들과 펜팔을 하기로 했다. 이로써 장충교회 작은손선교회가 액소더스교회 최초의 후원교회가 되었다.
액소더스교회는 마닐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빈민가에서 개척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아 교인들이 거의 없었다. 작은손선교헌금이 매달 100불 이상이 되었다. 돌반지를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돼지저금통을 통째로 들고 온 아이도 있었다. 성탄절에는 한국 과자며 학용품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선교사님은 ‘작은 손’이 보낸 헌금을 받고 눈물 자국이 선명한 편지를 자주 보내왔다. 한국과 펜팔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엑소더스교회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을 따라서 부모님들도 교회로 왔다. 펜팔은 양쪽 교회 아이들을 신바람나게 했다. 92년에는 30여명의 펜팔 팀이 생겨났다. 초등부 게시판에는 편지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펜팔을 시작한 지 3년째, 아이들은 자기 펜팔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했다.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선교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교회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학부모님들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재정, 날씨, 건강, 안전은 물론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을 갖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한편 우리 아이들은 따갈로그어 찬양을 연습하면서 친구들을 만날 날을 기다렸다.
1994년 8월 12일, 마침내 초등부 어린이 22명과 교사 13명 학부모 4명, 모두 39명이 4박5일 일정으로 역사적인 단기선교를 떠났다.
마닐라 공항에서 보호자 없는 어린이는 입국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무려 3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선교사님이 각서를 쓰고 가까스로 입국을 하게 되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엑소더스교회에 도착했다. 새까만 눈동자의 필리핀 아이들 수십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도착 예배를 드리고 펜팔 짝을 만나는 시간. 강단 한쪽엔 장충 어린이가, 반대쪽엔 엑소더스 어린이가 서서 선교사님이 이름을 부르면 무대 중앙에서 서로 만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귄 관계로 서로 얼싸안고 어쩔 줄 몰라했다. 짝을 만난 후에는 함께 찬양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따갈로그어로, 필리핀 친구들은 한국어로 찬양을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찬양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불렀다. 첫날부터 찬양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셨다. 성령이 충만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성령 충만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 모습에 교사와 학부모들이 은혜를 받았다.
교회로 돌아올 때는 모두가 개선장군이었다.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귀국 한 달쯤 지나서 평가회를 가졌다. 한 마디로 아이들이 선교지에 다녀와서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는 것이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이고 예배도 잘 드렸다. 선교사님은 이번에 작은손선교회가 엑소더스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공사를 했다고 기뻐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작은 손에서 일어났듯이 작은 손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한 교회를 세우고 계셨다. 이 작은 손이 위대한 일을 한 셈이다. 짧은 기간 동안 귀한 은혜를 체험케 하셨다. 평가회를 마칠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친환경 건축 마감재의 전문 업체로 널리 알려진 리빙스톤의 장근조 대표(장충교회 장로).
ⓒ크리스천투데이DB
“얘들아, 얘들아, 우리 선교할래?”
“네”
60여명의 초등부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만장일치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급하게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사진 찍으세요, 빨리요. 그리고 ‘작은손선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1991년 장로로서 초등부 부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선교’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그 때는 아는 선교사님이 한 분도 없었다. 먼저 선교사님을 만나고 싶었다. 기독교 서점에 가서 선교잡지를 샀다. 책 뒤에 선교사님들의 기도 편지와 주소가 있었다. 무작정 다섯 분의 선교사님께 편지를 썼다. “장충교회에는 ‘작은 손 선교회’가 있습니다. 선교사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필리핀 엑소더스교회의 박광수 선교사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우리는 매월 한 주일을 선교주일로 지키며 선교헌금을 하고, 그 교회 아이들과 펜팔을 하기로 했다. 이로써 장충교회 작은손선교회가 액소더스교회 최초의 후원교회가 되었다.
액소더스교회는 마닐라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빈민가에서 개척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아 교인들이 거의 없었다. 작은손선교헌금이 매달 100불 이상이 되었다. 돌반지를 가져온 아이도 있었고 돼지저금통을 통째로 들고 온 아이도 있었다. 성탄절에는 한국 과자며 학용품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선교사님은 ‘작은 손’이 보낸 헌금을 받고 눈물 자국이 선명한 편지를 자주 보내왔다. 한국과 펜팔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엑소더스교회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을 따라서 부모님들도 교회로 왔다. 펜팔은 양쪽 교회 아이들을 신바람나게 했다. 92년에는 30여명의 펜팔 팀이 생겨났다. 초등부 게시판에는 편지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펜팔을 시작한 지 3년째, 아이들은 자기 펜팔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했다.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선교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교회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학부모님들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재정, 날씨, 건강, 안전은 물론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을 갖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한편 우리 아이들은 따갈로그어 찬양을 연습하면서 친구들을 만날 날을 기다렸다.
1994년 8월 12일, 마침내 초등부 어린이 22명과 교사 13명 학부모 4명, 모두 39명이 4박5일 일정으로 역사적인 단기선교를 떠났다.
마닐라 공항에서 보호자 없는 어린이는 입국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무려 3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선교사님이 각서를 쓰고 가까스로 입국을 하게 되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엑소더스교회에 도착했다. 새까만 눈동자의 필리핀 아이들 수십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도착 예배를 드리고 펜팔 짝을 만나는 시간. 강단 한쪽엔 장충 어린이가, 반대쪽엔 엑소더스 어린이가 서서 선교사님이 이름을 부르면 무대 중앙에서 서로 만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귄 관계로 서로 얼싸안고 어쩔 줄 몰라했다. 짝을 만난 후에는 함께 찬양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따갈로그어로, 필리핀 친구들은 한국어로 찬양을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찬양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불렀다. 첫날부터 찬양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셨다. 성령이 충만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성령 충만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 모습에 교사와 학부모들이 은혜를 받았다.
교회로 돌아올 때는 모두가 개선장군이었다.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귀국 한 달쯤 지나서 평가회를 가졌다. 한 마디로 아이들이 선교지에 다녀와서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는 것이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이고 예배도 잘 드렸다. 선교사님은 이번에 작은손선교회가 엑소더스교회가 세워지는 기초공사를 했다고 기뻐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작은 손에서 일어났듯이 작은 손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한 교회를 세우고 계셨다. 이 작은 손이 위대한 일을 한 셈이다. 짧은 기간 동안 귀한 은혜를 체험케 하셨다. 평가회를 마칠 무렵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선교, 수지 맞는 장사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