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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굽

포항부동산정보공인중개사사무소 2013. 3. 22. 10:11

낮은 굽


낮은 굽 어느 여성의 키는 173cm인데 남자친구는 171cm다. 2센티 차이지만 같이 서있으면 10cm나 차이 날만큼 크게 보여 낮은 굽 구두를 사려고 했는데, 문제는 높은 굽은 사방에 널려있어 디자인도 좋은데 막상 낮은 굽을 사려니 이쁜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말을 들으면서, 새삼 여성들은 왜 한결같이 높은 굽 구두만 좋아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높은 굽의 신은 4세기부터 그리스 벽화에도 나와 있듯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에는 여자가 아닌 남성이 이용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를 뿐이다. 현대와 같은 하이힐의 개념은 중세 때 여성들이 외출할 때 옷자락에 묻지 않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것이 원조가 되었지만, 18세기부터 높은 굽 신발은 이미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필요에 의한 높은 굽의 신발이 어느 순간부터 차별의 의미로 바뀌면서 높은 굽은 역사의 과정이 중세 때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가 70개월에 걸쳐 당파싸움 끝에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굽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을 신기 시작했다. 이것이 기원이 되었는지 임금은 모든 관직을 오로지 낮은 굽만을 임용했고 왕위계승자인인 황태자는 당연히 높은 굽을 신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때부터 구두의 굽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칙 아니 규칙이 생겨난 셈이다. 높은 굽을 신는 자가 높은 자요 낮은 굽을 신는 자가 낮은 자다. 아무 근거도 없다. 무조건 높은 것이 높다는 논리다. 무슨 바벨탑도 아니고 위로 올라갈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신발이라도 높은 굽을 신길 원한다. 물론 여성들에게 구두란 단순한 신발을 넘어서 패션과 같고 어쩜 언더웨어와 같이 생각할 정도로 자존심이 걸린 도구이지만 높은 굽 덕분에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이힐을 즐겨 신으면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게 되면서 척추는 중심을 잡느라 요추는 저절로 앞으로 이동하면서 몸에 무리를 주게 된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왜 여성들은 하이힐에 중독되어 있을까. 남들 다 신으니까 동질감 형성을 위해 최소한 조직화 팀워크를 위해 신을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키가 더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함에 있다. 사회 통념상 키가 큰 것은 우월함의 상징이요 아름다움의 기본이 되기에 다리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고 있다. 백번 천 번 그 마음 공감이 된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까지 높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폐해일지 모르겠다. 자신도 높은 굽 도움을 받았건만 자기보다 작은 자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과 함께 하이힐을 신으면 무게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어 히프가 더 요동하듯이 생의 가치관까지 흔들린다는 개통철학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느 지인은 다리가 아파 어쩔 수 없어 낮은 굽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새삼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 했다. 낮은 굽 구두는 높은 굽보다 상대적으로 더 편하고 더 자연스러워 다리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런 외적인 장점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점은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높은 굽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외부에서 작은 충격만 와도 흡수할 힘이 없기에 5분 대기조처럼 긴장해야만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낮은 굽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가 있다. 올 1월 1일에 <소녀시대>는 4집으로 컴백하면서 파격적 변화가 있었다. 줄곧 하이힐을 고수했던 그들이 운동화나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등장했던 것이다. 하이힐을 신다보니 안무가 너무 어려워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무대 위로 올라갔는데 정말 편할 뿐 아니라 팬들로부터 귀엽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란 용어가 있다. 생물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서 계속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여 없어진다는 학설이다. 높은 굽을 쓰면 쓸수록 모든 것은 거만하게 높아져만 간다. 하지만 낮은 굽, 낮은 마음, 낮은 인생은 쓰면 쓸수록 발전되고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지는 법이다. 낮은 굽을 신으면 이렇듯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서 비로서 교만한 자신을 보게 된다. 뾰족 구두를 신고 있을 때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판단하면서 아프게 했던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법이다. 흔히들 똑똑한 사람은 남을 아프게 한다고 말한다. 아니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이 남을 힘들고 아프게 한다. 상황이야 다르겠지만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내가 미워했던 그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서로를 위한다는 것,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어느 분이 말한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는 히틀러와 테레사가 함께 있는데, 두려움과 미움이 기반을 이루면 히틀러가 되고 이해와 용서가 강해지면 테레사가 되는 것처럼 낮은 굽을 신듯이 낮은 마음으로 섬길 때 인생의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직장에 들어갈 때 제출하는 이력서는 자신의 경력을 소상하게 쓴다. 학력과 온갖 경력, 상벌까지 써야한다. 그 때 쓰는 '이(履)'는 ‘밟을’ 혹은 ‘신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력서란 그러므로 '신발로 신듯 자신의 지나온 과거 기록'한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 낼 때 이력서엔 대부분 규정되어있는 공적인 일들만 기록하게 된다. 높은 굽을 신었든 낮은 굽을 신었든 상관없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 발자취를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을 마무리 할 때도 조물주 앞에 이력서를 내야한다. 아니 안 내어도 다 아시기에 신(神)이 아니겠는가. 살아생전 약 10만 km를 다녔다. 집, 학교, 시장, 은행, 병원 등 한번이라도 맨발로 건넌 적이 없었다. 해가 바뀌면 묵은 신발을 버리지만 흔적은 버릴 수가 없다. 시크함도 좋고 스타일리시함도 좋고 클래식한 스타일도 좋지만 마지막 신발은 오드리 햅번처럼 굽이 낮은 것을 신어야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고 그를 바라볼 수 있다. 주여, 이스라엘이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은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들어 그를 알고 세상을 알기 위함인 것처럼 낮은 굽을 신어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당신의 마음을 갖고 편안한 사람 필요한 사람 함께 하고픈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낮은 굽을 신는 인생되게 하소서... 2013년 3월 9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클릭<호수와 세상사이에서>안내◆
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투가리님, 포남님
^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