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종교, 음식 종교
<든든한 교회>에서 설교한 날이었습니다. 담임목사 차를 타고 점심식사 하러 간 곳은 '은행나무 집'이었습니다. 흙으로 담을 친 옛날 초가였습니다. 큼지막한 누렁개 한 마리가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우리 일행을 흘금흘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알아서 전화로 미리 주문해 놓았습니다. 몸보신을 조금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짐작은 했습니다만 정말 보신탕집이었습니다. 아시아인들이 보신탕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신탕이 들어오는 걸 보니 다소 역겹게도 느껴졌습니다. 코셔(kosher) 곧 유태인 음식에 너무 인이 박힌 까닭인가 봅니다.
"하늘 아버님, 아버님이 지으신 것은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허지만 저희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희생의 제물이 된 동물들과도 함께 고난을 나누게 하시옵소서."
그렇게 짤막하게 기도했습니다.
"강사님께서도 허기가 많이 지신 것 같아요, 기도를 짧게 하시네요."
함께 앉은 대표 장로가 그렇게 토를 달자 모두 배를 움켜쥐고 웃었습니다. 나 예수는 미소만 지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어느 분이나 보신탕을 무척 좋아하세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다른 장로 질문에 또 한 번 배꼽들이 흔들흔들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세 가지씩이나요? 무엇들인데요?"
담임목사가 운을 떼자 요번에는 장로 부인들이 궁금하다며 나섰습니다.
"첫째, 진돗개처럼 양을 잘 지키려고 그럽니다. 둘째, 아무리 큰 소리로 설교해도 결코 목이 쉬지 않거든요."
음식을 먹다 말고 또 한 번 폭소가 방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은 무엇이냐며 어서 말해달라고 성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국에서 태어나셨으면 보신탕집 출입이 잦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긴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이번에는 모두 자빠질 듯이 웃어 제켰습니다. 허지만 그들은 오늘 설교한 강사가 나 예수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먹지 말라는 음식목록이 적혀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신약성경에서는 강사님 기도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했으니 우리 같은 평신도에게는 혼란이 가중됩니다. 좀 산뜻하게 풀어 주세요."
고등학교 현직 교감이면서 지난해에 장립 받은 장로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식탁 참석자들 모두가 조용한 것으로 보아 같은 궁금증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질문과 토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낮에 설교한 성숙한 신앙과 깊이 연관된 일이지요. 아기가 어릴 때에는 어머니가 주는 음식만 먹어야 하지요. 아무 것이나 모두 먹으라고 하면 양잿물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허지만 자라서 분별력이 생기면 무엇이나 가리지 말고 고루고루 먹으라고 하거든요."
그런 다음 보신탕 고기 한 점을 듬뿍 입에 넣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계속했습니다.
"종교 가운데는 특정한 음식만 먹어라, 특정한 옷만 입어라, 특정한 모자나 얼굴 가리개를 사용해라, 특정한 곳에서만 예배 드려라....그런 계율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금기사항이 많을수록 저급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종교일수록 인간을 꽁꽁 묶어 놓는 율법에서 사람 특히 영혼을 풀어 놓습니다."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가려면 금기사항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은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켜갈 수 있도록 해야 참 자유를 누리는 신앙이라고 결론 맺었습니다. 모두들 진지하게 듣고 진리를 깨달은 희열이 얼굴마다 흘렀습니다.
나 예수는 살코기를 몇 점 더 먹었습니다. 생활 현장에서 설교할 수 있는 큰 기쁨 때문에 음식 맛이 더 좋았습니다.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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