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치아가 나기 시작하던 아이였다. 이름은 로즈(Rose). 일주일 전쯤부터 저녁을 삼키지 못하더니 열이 끓었다. 뇌수막염이었다.
"5월 13일 주일날, 아이가 보통 잠자리에 들던 그 시간에 짧은 생애가 끝났습니다. 어머니가 짜주신 조그만 흰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겼습니다. 조선 부인들이 들꽃을 꺾어 아이 곁에 두었습니다. 무덤을 넘어서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런 어려운 순간들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1894년 5월 26일 부산, 윌리엄 베어드(배위량) 선교사의 부인 애니(안애리) 여사는 갓난쟁이 딸의 장례를 치른 뒤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조선에 선교사로 온 지 3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긴급구호 NGO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Serving the Nations)'의 양국주 대표는 "애니 여사의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고 했다. 개신교 전래 초 조선의 모습은 그가 북한ㆍ수단ㆍ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등 전세계 최악의 구호현장에서 지켜본 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가난, 질병, 고통으로 가득찬 조선 땅에서 가족과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주며 조선인을 섬겼습니다. 알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양 대표가 미국내 27개 도시를 돌며 발굴해낸 개신교 전래 초기 미국 선교사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선교학개론 - 평양에서 전주까지'(서빙 더 피플).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리로"
평양신학교의 설립자이자 '한국교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새뮤엘 모펫(마포삼열ㆍ1864~1939), 구약 번역자이며 '한국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레이놀즈(이눌서ㆍ1867~1951), 6ㆍ25전쟁 통에도 미국행을 거절하고 한국에 남아 '호남의 성녀'로 불렸던 플로렌스 루트(유화례ㆍ1893~1995), '나환자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셰핑(서서평ㆍ1880~1934)…. '선교학개론'에는 죽기까지 조선과 조선인을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생생하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기독교인의 삶의 모범이자,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한 셈이다.
전주 기독병원에서 일했던 의료선교사 윌리 포사이스(1873~1918)는 '나환자들의 성자(聖者)'였다. 조선에 온 지 5년이 지난 1909년 겨울, 나주를 지나 남평으로 가던 포사이스는 거적데기에 말려 버려진 채 죽어가는 여성 나환자를 발견한다. 그는 환자를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 광주로 갔고, 벽돌가마터 한 쪽에 방을 만들어 나환자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여수로 옮겨 문을 여는 나환자 치료ㆍ요양시설의 시작이었다.
"포사이스 선교사가 별세한 뒤 기념비는 원래 광주에 세워졌습니다. 1926년 광주 시설로는 늘어나는 나환자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여수 율촌면에 새 나환자촌이 만들어졌어요. 나환자들은 비석을 일주일간 지고 메며 130㎞를 걸어 여수까지 옮겼지요. 포사이스 선교사가 나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양 대표는 "당시 총독부가 수용한 나환자가 100명이 안 되던 때, 기독교인이 세운 시설의 나환자는 2000명을 넘었다"며 "이것이 기독교의 원본이다. 교회는 조건없는 헌신을 통해 항상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북전쟁 반목도 극복한 헌신
각각 북장로교와 남장로교를 대표하는 선교사였던 모펫과 레이놀즈의 우정 이야기는 지금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온 것은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뒤 30여 년 흐른 시점.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던 남과 북의 화합은 불가능해보였지만, 모펫과 레이놀즈는 함께 떠난 선교여행에서 죽을 고비를 같이 넘기며 40여년 조선과 조선교회를 위해 동지(同志)로 헌신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남북 장로회가 힘을 모으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도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됨으로써 조국인 미국의 남북대립도 뛰어넘었어요. 감리교도 하나, 침례교도 하나인데, 왜 한국에선 장로교만 스스로를 250여 개 교단으로 갈라놓았나요. 지금 한국교회 모습이 나눌 유산이 너무 많아 다투는 형제들 같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앙의 선배들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 대표는 책 속에 미국내 선교단체와 교단본부, 선교사 가족 등으로부터 직접 수집한 사진 4만점과 문서 9만점 가운데 미공개된 것들을 골라 실었다. 나환자들이 모여살던 민둥산의 집단 움막촌, 사찰의 부도탑 앞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선교사들, 일제에 의해 추방당한 조선 선교사들이 미국 본토에 모여 살면서도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복을 입고 지내는 모습 등 선교사들의 일상도 생생하다.
자랑스런 모습 뿐 아니라 부끄러운 모습도 함께 기록했다는 점은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고가의 백두산 목재를 몰래 베어다 팔기 위해 신축 교회 뒤에 쌓아놓고, 선교는 내팽개치고 돈을 좇아 금광 직원으로 취직하고, 호화저택을 짓고 갑부 행세를 하며 사냥으로 날을 샜던 일부 선교사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실려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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